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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영어를 잘 하고 싶다’는 말에 대해서

 

‘영어를 잘 한다’, ‘영어를 잘 하고 싶다’는 말을 할 때가 있다. 이게 정확히 무슨 뜻일까. 생각해보면 언어를 잘 한다고 말하는 건 외국인에게나 쓰는 말이다. 방송에 나오는 외국인이 한국어 하는 모습을 보면, 한국어로 대화 가능한 수준만 되도 “한국어 잘 한다”고 한다. 거기서 나아가 억양이나 표현이 한국인과 비슷한 정도일 때는 ‘잘 한다’는 표현을 하기보다 그냥 놀란다. 실제로 그 정도로 외국어를 익히고 대화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.

 

우리는 한국인에게 ‘한국어 잘 한다’고 말하지 않는다. 친구, 동료에게 ‘한국어 잘 한다’는 말을 해본 적 있는가? 없을 것이다. 대신 특정상황에서의 언어능력을 칭찬한다. ‘말 잘 한다’, ‘논리적이다’, ‘재미있다’, ‘발표 잘 한다’ 이런 건 단순히 한국어를 잘 하는 게 아니다. 그 언어능력을 따로 연습해야 한다. 개그맨은 동료들과 회의하며 개그를 짜고 연습한다. 아나운서는 발음과 톤을 연습한다.

 

영어도 마찬가지다. ‘영어를 잘 하고 싶다’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, 그게 정확히 어떤 걸 가리키는지 생각해보자. 수능영어나 토익같은 시험영어 점수를 잘 받고 싶은 건지, 영어 에세이를 잘 쓰고 싶은 건지, 영어 발표를 능숙하게 하고 싶은 건지, 외국 동료들과 얘기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은 건지 말이다.

 

‘영어를 잘 하고싶다’는 마음을 갖는 건 좋다. 하지만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영어를 ‘잘 하는’ 게 아니다.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영어를 ‘할 줄 아는’ 거다.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건 영어문장으로 말하고 쓸 수 있다는 거다.

 

운전을 못하던 사람이 운전면허를 따려고 준비할 때는, 우선 초보운전자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. 초보운전 마크를 차 뒤창에 붙인 채 출퇴근하고, 집 주변 마트에 장 보러 차를 타고 가는 정도 말이다. 처음부터 능숙한 운전자가 되려고 조바심 낼 필요 없다. 운전은 하다 보면 는다.

 

영어를 못하던 사람은 우선 초보 영어사용자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. 영어를 할 줄 아는 상태, 즉 영어 문장으로 말하고 쓸 줄 아는 상태를 목표로 해야 한다. 그런데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초보 운전자가 될 생각 보다는, 무조건 직업적인 영어사용자가 되려고 조바심 내는 경향이 크다.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도 직업적인 수준의 영어사용자를 훈련시키려는 듯 영어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.

 

사람에 따라 운전에 소질이 없을 수도 있다. 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차로 출퇴근하고, 집 주변 마트에 운전해서 가고 하는 정도는 할 수 있다. 영어도 마찬가지다. 한 팀, 조직, 회사를 대표에 영어를 사용하는 수준이 되는 건 소질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. 하지만 관심분야에 대한 내용을 영어로 말하고, 메일을 쓰는 정도는 대부분 할 수 있는 일이다. 영어를 잘 하지 않아도 말이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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